재단법인 옥절장학회

옥절장학재단

재단소개
재단소개 설립취지

설립취지

박옥절 이사장님 사진
설립자
박옥절 (1928 ~ 2022)
박옥절님은 *박경조(1899~1945)님과 정처례(1899~1951)님의 5남 2녀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 박경조님은 1919년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경고문을 배포하여 6개월간 옥고를 치른 분이시며 고모부 *김범수님은 의사로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신 분으로 항일운동가 집안이다.
1943년 11월 당시 영산포 여중 2학년이던 박옥절 여사님은 학교 기숙사에서 점심시간 중 난롯가에서 도시락을 올려놓고 같은 동급생인 일본인 여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한 일본 여학생이 조선인 지게꾼들은 한쪽 손으로 코를 풀어서 지겟다리에 닦는다고 "더러운 조선인"이라며 비하했다.
이에 격분하여 "더러운 조선인 나라에 왜 들어와서 사느냐, 깨끗한 너희들 나라로 당장 돌아가라"라고 하면서 시작된 다툼이 발생하였다. 당시 해남 경찰서장 딸인 상대 일본인 여학생이 자기 아버지에게 당시 상황을 일러바쳐 박옥절 여사님의 아버지인 박경조 씨 독립만세 사건과 독립자금 제공 등을 빌미로 강제 퇴학처분을 받게 되었다.
박경조 (1899 ~ 1945)
박경조 선생은 전라남도 화순 출신으로 1919년 3월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3월 1일 손병희 선생께서 서울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 선언문을 선포한 후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서울 시내 각 도처로 나누어 군중 선두에서 시위를 하였고 2차로 1919년 3월 5일 정치변혁을 목적으로 경고문을 배포하고 다시 남대문과 서울 역전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국가보안법 위반과 출판법 위반한 연속 범죄란 죄명으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김범수 (1899 ~ 1951)
경성의학전문학교 재학생이던 1919년 광주 3.1 운동 전개 과정의 주동 세력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1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어렵사리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 후 1924년 광주에 남선 의원을 개원하여 많은 가난한 환자들에게 무료로 의술을 펼쳤다고 전해진다.
설립자 박옥절 여사님의 학창시절
박옥절 여사님이 그리워하던 학창 시절의 추억
그 추억을 함께했던 친구분들이 사진으로 남아있습니다.
학창시절 사진
학창시절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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